연기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가 하소연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또 인가,라는 생각에 짜증만 난다. 나는 이런 것을 "찡얼거린다"라고 표현하는데,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 친구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신세한탄하거나 하소연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로서는 좋은 녀석이지만 이런 점은 너무 싫다. 자기가 선택한 일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고, 힘들 수 있지만 그걸 외부에 드러내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사회에서는 남이 시킨 일이라 하더라도 힘들다고 찡얼 대면 주위사람들이 니만 힘드냐며 질책하는데, 자기가 선택한 일에 대해 한탄하는 것을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짜증만 날 뿐이다. 이 친구는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감정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조차 능동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멘토, 선생님, 친구와 같은 타인이 방향성을 제시해 주거나 상담해주지 않으면 주체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결정하여 나아가지 못한다. 전형적으로 자기주도학습이 안 되는 부류여서 답답할 지경이다. 자기주도학습이 되지 않으니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실력이 향상되거나 개선되는 속도가 느리다. 어떤 일이 되었든, 자기주도학습이 되지 않고 나를 돌아보는 버릇을 들이지 않으면 주변에 좋은 선생님과 멘토가 있더라도 성장하지 못한다.
나와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왔고 상담도 해왔으니 감정적으로 가까운 나한테 기대고 하소연하려고 하는 것은 그 친구의 성향상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처음에는 몇 번 받아주다가 이제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까지 기분이 안 좋아지는 사태에 빠져 갈수록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대는 탓에 한두 번은 진지하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나아질 생각이 없어 이제는 그 얘기가 나올 것 같으면 화제를 돌리거나 대화에 응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람을 감정쓰레기통 취급하는 녀석하고는 더는 관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일을 시작할 만한 동기가 생기면 1~2년 정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은 이어나가지만, 그 이상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동기를 부여받고 열정이 있는 그 순간이 지나가버리면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연기도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팬미팅을 갔다가 연기가 하고 싶어 져서 시작했다고 들었다. 적성과는 별개로 너무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의사결정을 충동적으로 하는 즉흥적이고 감성파 성향인 것이다. 20대 초중반도 아닌 녀석이 낭만인지, 철이 없는 건지(...) 결과에 따라서는 좋은 동기일 수는 있지만, 슬프게도 사람인 이상 그 순간의 감정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는데, 이는 열정을 점점 식게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가기 위한 동력이 상실되는 일이 많다. 그 친구는 마치 냄비 같아서 열정이 불타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데, 결국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게 되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일을 방지하려고 많은 자기계발서나 강의를 보면 성장을 위해 환경설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주기적인 자극을 주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인데, 남들한테는 5년이 소모된다는 일도 자신은 1년이면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자기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상승시켰고, 기대와는 달리 성과를 내지 못해 자존감이 크게 하락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자기에 대한 기대감만 높으면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에 대한 골도 그만큼이나 깊기 때문에 결국 그만두게 되고,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늘 특정 분야의 출발선 근처에만 있었기 때문에 시작 초기에 나름 재미도 있고 적은 노력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아픈 고통을 감내하고도 낮은 성장이라는 성장의 비효율성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3년 차 이상의 타인이 해낸 만큼의 성과를 내려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되는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다. 초기에는 줄곧 성장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하면 저 사람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이번에 시작한 연기의 경우에는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의 위치와 현실을 그나마 깨달았는데, 최근, 이 여정이 끝났니 어쩌니 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역시 이미 반은 포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두세 번 정도의 오디션에 떨어졌다고 이제 끝이라며 마치 포기한 듯한 뉘앙스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저 말을 꺼낸 것은 불과 2년도 채 채우지 못한 시점이었다. 자기 객관화 실패로 기간 대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자신의 성과에 크게 실망했고, 그 결과 조금만 성과가 안 나와도 무너지는 유리멘탈이 되었다. 멘탈은 성장통을 겪으면서 강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기간 특정 분야에 종사하며 지속적인 고통을 받으면서 성장해 본 경험도 없고, 오랜 기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버릇만 들인 결과로 자신과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멘탈이 강해질 기회가 없었으니,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무너져 멘탈은 쇠약해지고 자존감은 하락한 채 그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성장의 기회를 다시 한번 놓치게 되는 것이다.
유리멘탈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자기 객관화를 한 이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그 순간이다. 그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특정 분야의 일을 시작하고, 그 분야에 있다 보면 일정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지 깨닫게 되는데, 그 결과 현실을 인지하고 자기 객관성이 생기면서 근거 없는 기대감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 단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제일 많고, 만약 크게 좌절하여 그만두게 되는 경우 심하면 패배주의자가 되거나, 설령 긍정적인 마인드로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더라도 희망을 가지게 되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내 일' 을 찾아가기까지 시작-희망-현실파악-포기-시작-희망-현실파악-포기의 무한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가 포기라는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이다음부터는 자기 객관성이 생긴 이후이므로 당장의 성과가 안 나온다 하더라도 지금의 내 수준에서는 큰 성과가 안 나오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쉽게 좌절하지 않게 되며, 더 나은 경지까지 가기 위한 길이 험난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미 알기 때문에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그 결과 유리멘탈에서 벗어나 한 분야에서 성장하며 오랜 기간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포기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로 얘기하긴 했지만, 포기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아니다. 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포기한 전적이 나름대로 있는, 불과 작년에도 일 하나를 포기하고 돌아온 마당에 남들보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꽤나 우스운 이야기다. 다만, 기간과는 관계없이 업을 포기할 때는 포기하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내가 그 일에 정말 시간과 노력을 들여 최선을 다했는지, 그랬음에도 더는 성과가 나오지 않고 성장하기 힘든 한계점에 봉착했는지, 내 적성에는 맞았는지 심도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적성에 대한 문제는 비중을 더 높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메타인지가 향상되고 다음에 도전해 볼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갈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고민해 보고 이제는 안 되겠다 싶으면 포기해도 좋다.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문제이다.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감정적으로 그만두게 되면 다음에 하는 일도 적성과는 관계없이 감정, 환경과 유행에 흔들려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일이 아닌 것 같을 때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것도 전략이다. 하나의 시도에 3-5년 이상의 장기간 시간 소모라는 리스크를 줄이고 그 대신 횟수를 늘려 많은 도전을 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경우 3개월-1년 정도를 하나의 사이클로 보기도 한다. 사람의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유한하다. 이 전략은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성장을 포기하고 시간을 소모하는 일에 해당하는데, 실제로 나 또한 개발에서 다른 업으로 변경하고자 했을 때 이 전략을 사용하여 1년이라는 시간을 소모하고 그만둔 바 있다. 그 친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개발이라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직무 변경을 습관성으로 하다 보면 스타트업의 정체성 없는 문어발식 사업과 별 다를게 없어진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하나에 몰입하지 못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도 출발선에만 머무르게 되면서 나이만 먹고 큰 성장은 하지도 못한 채 특정 분야의 카테고리 킬러나 전문가는 되지도 못하게 될 수 있다.
한 분야에서 성장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지, 성장 기회를 포기하고 짧은 주기의 직무 변경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갈지는 그저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고 진로를 결정하는 전략일 뿐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미래의 자신이 진다. 다만 내 경험과 간접 경험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한 분야에 몰입한 경우에 그 일을 할수록 반복 효과로 인해 실력이 나아지고 자신감이 향상됨으로써 행복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더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늘 그렇지만 두 전략을 고루 잘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전략만 사용하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이나 불행한 일을 억지로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자기가 잘하는 전문 분야가 하나도 없어질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짧은 주기의 직무 변경만으로는 절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언젠가는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잡고 몰입해야 성장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하여 전문가가 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두 전략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20대에는 좋아하는 일을 찾고, 30대에는 그 일에 몰입하고 미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좋아하는 일을 빠르게 찾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이는 너무나도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가장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니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친구는 타인에 대한 의존이 심한 만큼 주변의 영향도 정말 많이 받는다. 항상 자기 실력은 남보다 못하다며 열등감 섞인 한탄을 하곤 하는데, 비교대상을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두는 것은 성장을 가로막는 심각한 요인이다. 사실 타인이랑 비교만 안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자기는 2년도 안 했으면서 5년 차 이상의 연습생과 견주려고 하거나 아직 자신에게는 이른 사람과 자꾸 비교하려고 들어 자신감을 크게 상실하는 일이 잦다. 또한 타인의 평가에 심각하게 흔들리거나 의존하여 자기 주관이 없고 감정기복이 심해 음주가 잦다. 타인의 평가가 박하면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 어떠한 점을 개선하고 나아가야 할까 와 같은 건설적인 고민을 해도 모자란 판에 그저 나는 평가가 박하고 남들은 칭찬을 받는다는, 남보다 못한다는 비교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나에게 짜증이 날 정도로 찡얼거리는 이유는 대부분은 여기에서 나온다. 비교를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면 자기 객관화를 위한 도구로써 현재 자신의 위치와 현실을 이해하고 때로는 성장을 위한 촉진제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나마 자신이 성장하지 못해서 좌절하는 것은 개선 가능성이 있지만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비교는 나름대로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부정적일 때가 더 많고 그 영향도 치명적이다.
성장과 성과를 내지 못해서 나온 결과물인 자존감 상실이라는 감정의 무서운 점은 사람을 패배주의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패배주의자가 되면 사람이 부정적으로 변하는데, 패배주의는 곧 우울증이 되고 결국 자신의 생명을 앗아가는 선택까지 할 수도 있게 된다. 패배주의의 큰 문제는 지금 하고 있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안 될 이유만을 먼저 찾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내가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시도하지도 않게 된다. 안 될 이유도 참 가지 각색인데, 성별, 환경, 나이, 외모, 자본, 시간 등 끊임없이 나온다.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얘기해 보면 그건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이민다. 안 될 이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대안을 얻을 수 없다. 애초에 패배주의에 빠진 사람에게 대안이라는 것을 찾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패배주의에 빠지면 돌파구와 대안 같은 건설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이는 성장을 할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리해 보자면, 성장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은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 타인주도 학습, 짧은 주기의 직무 변경, 메타인지의 부재로 인한 자기 객관화 실패,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깨지는 유리멘탈,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안 될 이유만 만들어내는 패배주의가 있다. 패배주의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타인에 대한 의존이 심하면 메타인지가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자기가 잘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어서 그 순간의 감정과 환경, 유행에 흔들려 충동적으로 여러 일들을 찍먹하게 된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아 자기에 대한 높은 기대가 있지만, 적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찍먹만 하게 되니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아 많은 실패가 누적되면서 유리멘탈이 되고, 이와 대비되게도 같은 분야에서 실력이 뛰어나고 잘 나가는 타인을 보고 열등감에 멘탈이 다시 한번 무너지게 된다. 그 결과, 패배주의자로 전락한다.
나는 어떤 일에 도전하고자 할 때 패배주의는 늘 경계를 하고자 한다. 성과가 안 나왔을 때 엄습하는 패배주의는 늘 나를 구렁텅이로 빠뜨리려 항상 함정을 파놓고 유혹하는데, 반드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미 덮친 패배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라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딛고 일어나면 다시금 성장하게 된다. 나는 작년에 직무 전환에 실패하면서 다시 한번의 쓴 패배주의를 겪었다. 수개월이라는 꽤 오랜 기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딛고 일어났고, 메타인지는 크게 향상되었다. 그 결과 다시 펜을 잡고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평소에 메타인지를 키우는 것은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예방으로써 중요한 일이지만, 이미 심각한 패배주의에 빠진 사람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요인을 단 한 사람에게서 발견했으니 그 친구는 내게 있어서 선생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한 동안 패배주의에 빠졌던 적이 있었음에도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정리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이 글의 주제를 떠올리게 해 준 그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P.S. 한 가지, 넌 진짜 인스타그램 하지 마라. 타인하고 비교하는 성향이 강한 너는 진짜 해서는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