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그만두고 코딩 공부해요
뉴스 기사에서도 그렇고 정말 지겨울 정도로 매일같이 어딜 가나 개발자들의 연봉이 상승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는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개발자로 전향하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기사에서는 맨날 어느 기업의 개발자 연봉이 2천만 원 상승했다느니, 이직하면 연봉을 두 배로 쳐준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 기사들은 사실이라고는 하더라도 자극적이고 비개발자에게 너무 환상만 심어지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론 불편하기 그지없다. 개발자가 아닌 다른 직업군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등 이야기하고 있으나 현실을 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데 말이다.
기사에서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개발자가 더 많이 받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실은 다른 직업군에서도 따지고 보면 상대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은 많이 받고, 아래에 있는 사람은 적게 받고 일하고 있다. 같은 개발자여도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있고, 기사에서 나오는 것처럼 6-7천씩 받는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당신은 6-7천을 받는 개발자가 되지 못하니까 꿈깨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어떤 개발자라도 6-7천을 받는 개발자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개발자가 된다고 해서 다 그렇게 받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니 제발 무조건적인 환상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기사에서 접하는 개발자들은 대체로 상위권이다. 한 직업의 상위권은 대부분 돈을 잘 번다. 사업가, 크리에이터 등의 상위권 그룹은 개발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창업, 도전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에 실패하면 취직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취직해보다가 정 안돼서 창업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만약 하던 일을 그만두고 돈만 보고서 개발자로 전향하려 든다면 거울을 보고 고민해보자. 현재 자신이 일하고 있는 산업군의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를 버는지. 만약 그런 고민 없이 기사와 학원에 현혹되어 돈만 보고 개발자를 하려 든다면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요즘 코딩을 새로 배운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치 현재 코인이나 주식 열풍이랑 견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도 네카라쿠배 갈 거야.
흔히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 민족)라고 하는 기업들은 많은 개발자가 가고 싶어 하는 선망의 기업이며,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취준생이라면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기업이다. 그리고, 그 기업은 다른 기업에 비해 선두에 있고 실제로 타 기업에 비해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연봉도 높다.
일반적으로 네카라쿠배를 꿈에 품고 개발자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마치 초등학생 때 그저 연예인들의 무대 위의 모습만을 바라본 채 연예인을 꿈꾸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 뒤에서 얼마나 피나는 연습이 있고, 많은 노력 끝에 그 자리까지 도달했는지는 알지 못한 채로. 흔히 유튜버들 돈 많이 번다고 이야기하며 비하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럼 당신도 하면 되지 않은가? 시간이 없다거나 갖은 핑계를 대면서 하지 않을 거라면 그들을 욕할 자격은 없다. 누구나 그 일을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국비 학원에서 중도 포기자가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실제로 국비 학원을 다닌 사람의 말을 여럿에게 들어봐도 중도 포기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비단 특정 학원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포기자가 많다는 건 네카라쿠배, 또는 기사에서 개발자가 돈 많이 번다고 들어서 시작은 했는데 막상 해보니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느끼고 포기한 비율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학원의 커리큘럼과 안 맞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걸 따라가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냥 취미도 아니고 직업으로 삼으려고 하는 건데 그 정도 각오도 없으면 도대체 어떡하자는 것인가. 꿈을 크게 갖고 높은 것을 바라보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위만 바라보는 것은 그저 현실성 없이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네카라쿠배라는 목표가 있다면 그 자체만을 보지 말고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계획과 전략을 세워야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요즘, 문과생도 코딩은 교양이라던데.
코딩 학원들의 단골 멘트다. 그들의 공포 마케팅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학원에 돈을 바치는 것과 똑같다. 금으로 돈을 벌고자 했던 골드러시 때 실제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금을 캐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장비를 팔았던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부는 코딩 열풍으로 인해 실제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다 학원이지 않은가. 얼마나 돈을 쓸어 담았으면 그 비싼 카카오톡에까지 광고를 실었을까 싶을 정도다. 여담으로 주식투자 열풍으로 돈을 번 것은 개인투자자보다도 증권사와 (유사)투자자문업체들이 더 해먹었다.
그러한 광고에서 나오는 멘트들을 보면 포모증후군*을 불러일으킨다. 코딩은 교양이라면서 마치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나만 안 해서 뒤쳐지고 있다는 공포심을 주면서 학원에 다닐 것을 유도하고 있다. 공포 마케팅은 보통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학원에서 많이 당하는 수법이다. 다른 집 자식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던데, 우리 집 자식도 해야 한다며 부모에게 공포심을 심어 자식에게 다니기도 싫은 학원을 억지로 다니게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돈을 열심히 갖다가 바쳤는데, 중간에 포기하거나 그 만한 가치를 얻지 못해서 손해만 봤는데, 정작 학원만 돈 번다니 이 얼마나 억울하고 화나는 일인가.
어느 학원인지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일을 전부 자동화를 돌려놓고 커피 한잔만 먹고 오면 작업이 끝나 있었다며 마치 개발이 일에 있어서 만능 도구인 것처럼 광고하거나, 대학원에서 석박사의 학위를 따면서까지 연구하고 있는 데이터/AI 분야에 대해 단 몇 개월이면 마스터할 수 있다며 대학원생들을 기만하는 광고를 하는 학원도 보았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원이 아니어도 길은 많다. 기사나 광고에 현혹되어 아까운 돈을 버리지 말자.
*포모증후군: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 증상.
가치 함정에서 벗어나다.
현재 개발자 연봉의 상승 모멘텀이 온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며 가치 함정(Value Trap)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의견을 던지고 싶다. 가치 함정이라 함은 실질적인 가치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어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최근 개발자들의 연봉이 줄 상승하면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개발자가 그간 받고 있던 대우는 많은 기업에서 근로계약 시 체결되고 있는 포괄임금제에서 드러난다. 포괄임금제는 계약 시점에 야근을 몇 시간 할 것을 가정하고 미리 계약에 넣기 때문에 실제로 그 시간을 초과하더라도 정해진 임금밖에 받을 수 없다. 이는 개발자는 야근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개발자를 말 그대로 갈면 어떻게든 결과는 나오기 때문에 굳이 추가적인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한 기업들의 행태에서 나온 것이다.
개발자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는 IT 플랫폼 기업들은 개발자들이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라 여겨 가치를 인정하고 연봉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간 유지하던 가치 함정 상태에서 드디어 벗어난 것이다.
여전히 쓸만한 개발자가 없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개발자들의 몸값이 올라갔기 때문에 작은 기업들은 개발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아쉽게도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그런 질문은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애초에 실력 있는 개발자를 저렴하게 부리고 싶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한 가지 생각해볼 만한 점은 그렇다고 해서 개발자들의 평균 급여가 드라마틱하게 상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개발의 수요도 늘어났지만 코딩 열풍에 힘입어 주니어 개발자들의 공급은 너무나도 많아진 상태다.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낮아지게 되어있다.
많은 이들이 네카라쿠배에 들어가고 싶어 가지만 모든 개발자가 전부 입사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차선책으로 작은 기업에 들어가는 사람도 생기면서 연봉 피라미드가 형성된다. 연봉 피라미드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연봉 상승과 더불어 새로운 개발자들의 유입 증가로 인해 피라미드 모양이 바뀐다기보다는 그냥 피라미드 자체의 덩치가 어느 정도 커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연봉 상승 모멘텀으로 인해 실력 있는 개발자를 저렴한 연봉으로 구하는 양심 없는 짓은 이제 어느 정도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개발자 자체를 영입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물론 세간에는 쓸만한 개발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애초에 쓸만한 개발자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건지 기업마다 다르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말이 다 다르기 때문에 되게 모호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준비가 너무 안 된 상태로 지원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그들의 이야기가 공감이 안 되는 것도 아닌지라 참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준비라는 것도 기준이 모호하지만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급이 증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