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를 넘어, 새로운 길로
칼럼/에세이

개발자를 넘어, 새로운 길로

여러 고민을 거치던 중, 개발자를 그만둬야 할까? 에 있는 유니밧님의 장문의 댓글에 대한 대답은 직접 포스트로 적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 적게 되었다. 내가 개발자를 그만두겠다고 고민을 시작하고 한 달 여가 지난 지금의 시점의 마음가짐을 말이다.

안녕하세요. 정상우 님을 지켜봐왔던 응용 프로그래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매사 너무도 열심히 하시는 걸 보면서 항상 어떤 목표라고 할 무언가가 있으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저는 늘 저런 고민을 하며 살지만, 정상우 님은 좀 다르실 줄 알았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정상우 님이 열심히 하시는 것에 굉장히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러 글들을 올리신 것을 읽을 때면 제 안에서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분은 나중에 뭘 하시려고 이런 기술들을 공부하실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부러워하고 선망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에게는 정상우 님이 고등학생 때 보셨던 그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를 모를 때는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목적을 임의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일단 한동안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쉬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이는 것 같더군요.
너무 무언가를 오랫동안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것에 매몰되어 종종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존중해 주시고
충분히 오랫동안 잘 쉬신 후에 다시 시작해 보셨으면 합니다.
해오신 일들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위대한 일들이랍니다.
개발자, 개발, 혹은 다른 어떤 직업이나 배움, 그와 관련된 어떠한 것에도 너무 얽매이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단어로만 설명하기에 정상우 님이 가지고 계신 잠재력과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를 해오신 것은 여러 연장을 잘 닦아놓았다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이젠 연장이 준비되었으니, 잠시 쉬다 돌아와 잘 사용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조금은 단순하게 생각해 보세요.
저는 응용 프로그래머의 장점이 공부한 것을 다양한 부분으로 응용할 수 있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술을 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을 익히는 과정 자체를 다른 곳에 응용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떤 일을 하시건 응용력을 가지고 계시기에 잘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잘 쉬어주세요.
해오신 일들을 보며 영향을 받은 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주변에 미치시는 영향이 크답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신 것은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지금과 같은 순간이 있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게 되실 것을 믿습니다.

행복은 다소 추상적인 것이 아닐까요?
조금의 재밌는 일상이 쌓이면 그것이 곧 행복이란 것이 제 생각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인생은 장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목표를 이룩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걸어가다 보면 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빛을 내는 듯합니다.
조급하게 생각 마시고 잘 쉬고 돌아와보세요.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는 때가 옵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누가 시켜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일조차도 장차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설령 세상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없다 해도 말이죠.
어쩌면 정상우 님이 직접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정상우 님의 블로그를 본 누군가가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그것 또한 정상우 님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데에 영향을 준 것 아닌가요?
우연이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목적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고 목적이 생기는 시점도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아예 영원히 생기지 않더라도 그조차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요.

이것저것 생각하는 걸 적다보니 댓글이 길어져버렸네요.
글 올리신지 시간이 조금 지나서 댓글을 달았기에 어떻게 하고 계신지 모르겠군요.
모쪼록 잘 쉬고 계시기를 바라봅니다.

나는 지금 매일 하던 코드 편집기를 열어보지도 않으며 개발 서적으로 공부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인문/사회/경영/경제와 같이 지극히 문과스러운 지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문과로 취직할 생각인가?"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내면을 들여다 보기

마인드 맵을 열고 직업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원하는 직업관에 맞는 일은 무엇일까? 싶어 하나하나씩 정리해보고 싫다면 왜 싫은지, 이 일이 무엇이 좋은지, 현실적으로 어떤 벽에 부딪힐 수 있는지 적었다. 개발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면서 말이다. 의아하겠지만 내 진로 고민에는 정치인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중점으로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빨간색 바탕이 있는 것은 과거에 시도했던 일이다.

 

빨간색은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 주황색은 시도는 해볼 수 있으나 모호한 것, 초록색은 하고싶거나 해볼만한 것이다.

시도를 안 해본 것이 아니다. 피아노는 7년을 치고 관뒀으며 웹소설 쓰기도 했었다. 문제는 이것들이 '나'에 초점이 맞혀져 있었다는 점이다. 하다 보니 재미도 없었고, 보람도 없었기에 관두게 되었다. 다만 20대라면 고민하지 말고 무작정 시작해보라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그냥' 해봤다. 이 작은 마인드맵 안에 지난 수년간의 내 모든 고민이 들어있다. 과거에 시도해본 것들을 포함하여 지금의 내 시점에서 짜낼 수 있는 길과 생각은 다 나왔다. 사실 여기에는 포함 안 된 것들이 있는데 '업'이 아니라 그저 '부'이기에 생략했다.

개발이 아닌, 개발자는―

생각해보니 개발이라는 일 자체에 대해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요구되는 '개발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싫었다. 기업의 한 부서의 소속되어 주가 되지 못하고 그저 부품이 되어 일해야 하는 그 삶이 싫었다. 이공계가 취직이 잘 된다고는 해도 결국 그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인문계열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난 그저 그런 식의 취직을 위해 개발에 대해 성장, 기술이라는 가치에 속박되어 살아왔다.

 

개발이라는 일 자체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 어찌 보면 그렇지 않다. 개발자만이 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난 그래서 개발을 그저 도구로 삼기로 했다. 개발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개발자를 그만둬야 할까? 에도 적었듯, 나는 다른 직업으로 정신건강과 관련된 직업을 고민하고 있었고, 수능을 다시 볼까라는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많아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인데, 그 행위를 꼭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저 의사와 환자를 연결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제3의 길

개발자가 되면 개발을 하고,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정신과 의사가 되면 진료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정석적인 루트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른 루트로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결론적으로 지금을 말하자면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그만둔다.(여지는 남겨두자) 기술자가 될 정도로 기술 그 자체에 큰 관심은 없기 때문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개발 자체는 그만두지 않으며, 그것을 도구로 삼아 정신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기업 창업을 생각 중이다. 개발자는 아니지만 '개발자스러운' 기업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인문학과 관련된 서적을 읽고 있는 것은 인문 그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기 때문이지만, 창업을 위해 다방면의 지식을 익혀두기 위한 포석으로 사용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개발은 도구, 취미가 되어 '업'이라는 최전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될 것이다.

 

개발을 일로 여겼을 때는 목적의식, 사명감과 같이 내가 생각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신적 가치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발이 도구와 취미가 되었을 때는 그저 재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 이유가 된다. 무게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한테는 이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개발로는 재미를 잡고 목적의식과 사명감은 기업을 창업함으로써 가지게 되어 적절하게 조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 '개발자스러워' 진다

'개발자스러워'진다는 말은 나의 기준에서 개발자는 아니지만 개발을 재미있게 여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에게 외주 의뢰를 받거나 하나의 기업에 소속되어 하나의 제품을 위해 개발하게 되어 억압을 느낄 필요 없이 '내 개발'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 보는 것, 상품성이나 시장의 상황을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언어,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여 애플리케이션을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백엔드를 구성할 때 굳이 싫어하는 자바를, 프런트엔드는 굳이 싫어하는 리액트를 쓸 필요가 사라진다. 웹어셈블도 재미있지 않을까? 그럼 해본다. 시장에 맞추어서 내가 싫어하는 개발 스택을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으며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술로 갱신을 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과거보다 더욱 '개발자스러워'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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