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에세이

개발자를 넘어, 새로운 길로

여러 고민을 거치던 중, 유니밧님의 장문의 댓글에 대한 대답은 직접 포스트로 적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 적게 되었다. 내가 개발자를 그만두겠다고 고민을 시작하고 한 달 여가 지난 지금의 시점의 마음가짐을 말이다.

 

고맙습니다 :)

나는 지금 매일 하던 코드 편집기를 열어보지도 않으며 개발 서적으로 공부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인문/사회/경영/경제와 같이 지극히 문과스러운 지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문과로 취직할 생각인가?"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내면을 들여다 보기

마인드 맵을 열고 직업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원하는 직업관에 맞는 일은 무엇일까? 싶어 하나하나씩 정리해보고 싫다면 왜 싫은지, 이 일이 무엇이 좋은지, 현실적으로 어떤 벽에 부딪힐 수 있는지 적었다. 개발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면서 말이다. 의아하겠지만 내 진로 고민에는 정치인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중점으로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빨간색 바탕이 있는 것은 과거에 시도했던 일이다.

 

빨간색은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 주황색은 시도는 해볼 수 있으나 모호한 것, 초록색은 하고싶거나 해볼만한 것이다.

시도를 안 해본 것이 아니다. 피아노는 7년을 치고 관뒀으며 웹소설 쓰기도 했었다. 문제는 이것들이 '나'에 초점이 맞혀져 있었다는 점이다. 하다 보니 재미도 없었고, 보람도 없었기에 관두게 되었다. 다만 20대라면 고민하지 말고 무작정 시작해보라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그냥' 해봤다. 이 작은 마인드맵 안에 지난 수년간의 내 모든 고민이 들어있다. 과거에 시도해본 것들을 포함하여 지금의 내 시점에서 짜낼 수 있는 길과 생각은 다 나왔다. 사실 여기에는 포함 안 된 것들이 있는데 '업'이 아니라 그저 '부'이기에 생략했다.

개발이 아닌, 개발자는―

생각해보니 개발이라는 일 자체에 대해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요구되는 '개발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싫었다. 기업의 한 부서의 소속되어 주가 되지 못하고 그저 부품이 되어 일해야 하는 그 삶이 싫었다. 이공계가 취직이 잘 된다고는 해도 결국 그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인문계열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난 그저 그런 식의 취직을 위해 개발에 대해 성장, 기술이라는 가치에 속박되어 살아왔다.

 

개발이라는 일 자체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가? 어찌 보면 그렇지 않다. 개발자만이 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난 그래서 개발을 그저 도구로 삼기로 했다. 개발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개발자를 그만둬야 할까? 에도 적었듯, 나는 다른 직업으로 정신건강과 관련된 직업을 고민하고 있었고, 수능을 다시 볼까라는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많아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인데, 그 행위를 꼭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저 의사와 환자를 연결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제3의 길

개발자가 되면 개발을 하고,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정신과 의사가 되면 진료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정석적인 루트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른 루트로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결론적으로 지금을 말하자면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그만둔다.(여지는 남겨두자) 기술자가 될 정도로 기술 그 자체에 큰 관심은 없기 때문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개발 자체는 그만두지 않으며, 그것을 도구로 삼아 정신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기업 창업을 생각 중이다. 개발자는 아니지만 '개발자스러운' 기업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인문학과 관련된 서적을 읽고 있는 것은 인문 그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기 때문이지만, 창업을 위해 다방면의 지식을 익혀두기 위한 포석으로 사용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개발은 도구, 취미가 되어 '업'이라는 최전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될 것이다.

 

개발을 일로 여겼을 때는 목적의식, 사명감과 같이 내가 생각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정신적 가치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발이 도구와 취미가 되었을 때는 그저 재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 이유가 된다. 무게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한테는 이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개발로는 재미를 잡고 목적의식과 사명감은 기업을 창업함으로써 가지게 되어 적절하게 조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 '개발자스러워' 진다

'개발자스러워'진다는 말은 나의 기준에서 개발자는 아니지만 개발을 재미있게 여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에게 외주 의뢰를 받거나 하나의 기업에 소속되어 하나의 제품을 위해 개발하게 되어 억압을 느낄 필요 없이 '내 개발'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 보는 것, 상품성이나 시장의 상황을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언어,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여 애플리케이션을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백엔드를 구성할 때 굳이 싫어하는 자바를, 프런트엔드는 굳이 싫어하는 리액트를 쓸 필요가 사라진다. 웹어셈블도 재미있지 않을까? 그럼 해본다. 시장에 맞추어서 내가 싫어하는 개발 스택을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으며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술로 갱신을 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과거보다 더욱 '개발자스러워'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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